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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어쩌구/독후감

<신경 끄기의 기술>을 읽고...

by annmunju 2021. 7. 28.

 

 

<신경 끄기의 기술> 마크 맨슨 저

 

mungdo-log.tistory.com

 

-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 2가지 질문

 

당신은 어떤 고통을 원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기꺼이 투쟁할 수 있는가

 

난 결과를 사랑했다. 하지만 과정은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패했다. 그것도 여러 번. 심지어 실패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내 꿈은 거대한 산과 같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난 그 산을 오를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저 정상을 상상하는 걸 좋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진실은 이런 설명보다 훨씬 시시하다. 진실은, 내가 뭔가를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보상을 원했지만 투쟁은 원하지 않았다. 결과는 원했지만 과정은 원하지 않았다. 투쟁을 미워하고 오직 승리만을 사랑했다. 그런데 삶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투쟁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당신이라는 존재를 규정한다.

 

결과를 사랑했다. 지금 내 상황에 그보다 더 알맞는 표현이 있을까. 나는 결과만을 상상한다. 고통스러운 과정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늘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을 마주할 때 다른 노선을 선택하곤 한다.
당연히 고통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그냥 나른하게 편한 의자에 누워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고 감자칩이나 나쵸 같은 바삭바삭한 과자들을 먹으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는... 그냥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과연 매일 그렇게 산다면 행복할까? 당연히 평일에는 열심히 노력하고 가끔가다 오는 휴가에나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매일 그렇게 살면 척추가 다 망가질 것이고 살이 뒤룩뒤룩 쪄서 불편함이 오겠지.
뭘 위해 투쟁할 것인가. 아직은 모르겠다. 당장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불만도 많다. 맘 안맞는 애인과 다투기도 하고, 하루 온종일 늘어져 있는 하루가 싫기도 하다. 구르고 있는 것도 싫고 오르고 있는 것도 싫은 이 모순적인 마음. 감탄하며 책 읽을 때와 달리 시간이 지나면 생각도 둔해지는것 같다.

 


 

- 스티브 잡스가 될 거라는 망상에 빠진 벤처기업가

 

자존감 캠페인의 문제는 '자신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느끼느냐'로 자존감을 측정하는 데 있다. 개인의 자아 존중감을 제대로 측정하려면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어떻게 느끼느냐를 봐야한다.

허세꾼들은 일종의 자아도취 거품으로 자신을 감싸며, 자신의 허세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왜곡한다. 무엇이든 휘둘리지 않는다. 허울뿐인 정신을 지키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실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부정적인 부분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한다.

고통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문제에 대항할 힘을 잃고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허세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대체로 그 양상은 다음의 두 방식 중 하나로 나타난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고 남들은 다 머저리야. 난 머저리고 남들은 다 대단한 사람이야.) 허세꾼들이 두 방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 있을 것이다.

세상만사를 다 끌어들여 자신을 피해자로 몰아가는 사고도 이기적인 태도다.

 

가끔은 나 스스로를 지나치게 과대평가 할 때도 있고, 반대로 내 부정적인 부분을 분명히 적시할 때도 있다. 하긴 자존감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거니까. 더 나은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하려고 하는건 분명하지만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늘 한결같이 분명한 건 어려운 것 같다.

 


자기인식의 단계

1) 자기 감정 이해하기 : 난 이럴때 행복해. 난 이럴때 슬퍼. 난 이럴때 희망을 느껴.

2) 우리가 어떤 감정을 '왜' 느끼는지 묻기 : 난 왜 화가 날까? 목표를 이루지 못해서일까? 난 왜 무기력한 기분이 들지?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3) 가치관 파악하기 : 나는 왜 이것을 성공 또는 실패로 간주할까? 난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거지? 난 자신과 주변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걸까?

 

1-1) 나는 분명 효율적이고 올바른 길이 있는데 굳이 돌아갈 때 화가 나는 것 같다. 예컨데 약속 시간에 알맞게 도착하려면 여러가지 길을 고려해야하는데, 지도가 알려주는 한가지 길로만 고집할 때. 아니면 일처리에 있어서 정확하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일일히 옮긴다던지 그런 것들이다. 근데 사실 그런건 그냥 알려주면 되는데 왜 화가 나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건 화를 내고 금방 사과하는 편이다. 그렇게 화낼 것 까진 아니였던 것 같아 하면서.
1-2) 나는 내 감정을 이해해주지 못할 때 그리고 경솔하게 말할 때 속상하고 서운하다. 감정을 최대한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인데 본인이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이해가 안된다며 화를 내곤 한다. 그러면 감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마음 깊은 데서 무거운 돌덩이가 앉은 것 처럼. 소중한 사람이 그럴 때 그 마음이 커진다.
2-2)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나와 만난 모두가 나를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은연의 강박이 있다.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노력을 하기에 다른 사람도 나에게 애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할 때 서운한 것 같다.
3-2) 그런 강박을 갖게 된건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다. 사실 중요한 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근래에 깨닫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좀 더 캐쥬얼하고 쿨해질 수 있는 것 같다. 남들 눈치 보지 않으려 한다. 다만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신경 쓰는 건 어쩔수가 없다. 그런 제약에서도 벗어나고 싶다.

 


외부 환경이 어떠하건 내 삶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내 책임이다. 우리가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해석하느냐, 대응하느냐는 우리 마음에 달려있다.

책임과 잘못이 붙어다니기는 사실이지만 둘은 같은 게 아니다. 우리는 항상 경험을 책임지며 살아간다. 그것이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잘못은 과거 시제, 책임은 현재 시제이다. 당신은 이 책을 읽기를 선택하고 있다. 이 개념들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기를 선택하고 있고, 스스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건 당신 책임이다. 당신이 내 발상을 설득력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마도 내 잘못일 거다. 내가 이 문장을 쓰기로 선택한 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거나 읽지 않기로 선택한 건 당신 책임이다.

 

어쩔수가 없다. 라는 말이 이 글을 읽고 꽤 무책임한 말이라고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내 문제다. 
세상에 많은 문제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불가피한 상황이라 해도 어떻게 할지 고르는 건 나니까. 내 인생에 책임자도 나다. 남탓 할 수 없다. 
최근에 대학원에 오라는 제의를 받았다. 졸업과 관련해 불가피한 상황이 있어 대학원에 오면 해결될 일이라는 말로 설득되었다. 나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아 보였다. 근데 사실 나는 대학원 가고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세워둔 장기적인 계획에서 나는 내가 기꺼이 해야겠다 마음먹는 시기에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설득력있는 말로 그냥 이리저리 휘둘려 버려 대학원 가겠다 했다. 참 어리석다.
핑계는 각설하고 대학원은 갈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리려 한다. 내가 내 길을 선택할 거다. 그리고 그건 내가 책임질 것이다. 아직은 공부가 더 필요하기에 공부를 할 것이고 준비가 되면 구직준비를 해서 취직 할 것이다. 

 


- 매 순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인간의 뇌는 의미를 산출한다. 우리는 연관성을 끌어내 의미를 형성한다. 경험은 예외 없이 마음속에서 연상과 연결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불완전하고 스스로 의미를 만든 순간 우리는 그 의미에 집착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믿음이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어떤 믿음은 다른 믿음보다 덜 틀릴 따름이다. 

 

-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라는 엉터리 충고

 

인간의 기억은 믿을수 없다. 우리의 두뇌는 지독하게 편향된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믿음과 경험에 바탕을 두고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새로운 정보는 모조리 일단 기존 가치와 결론에 무게를 두고 저울질 한다. 그 결과, 두뇌는 항상 우리가 그 순간에 참으로 여기는 방향으로 치우친다.

 

나는 어떤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사는가. 30이 되기 전에 1억을 모으겠다는 막연한 결심을 했었다. 의도는 모르겠다. 집을 사고 싶었는데 1억으로는 집 못산다. 그럼 내가 왜 굳이 시간에 쫓기면서 내가 생각하는 막연한 큰돈을 모으겠다고 애썼을까. 이유를 못찾겠다. 사실 모든 일에 이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달리는데 이유만큼 큰 동기부여는 없으니까. 고민 또 고민해봤다.
남들보다 잘나고 싶었다. 좋은 직장,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싶은게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잘나 보이고 싶어서였다. 많은 대중들이 그렇게 살고 있고 그게 옳다고 믿으니 나도 그런줄 알았다. 배포가 남들보다 조금 작을 뿐이지 부자되고 싶은 마음은 똑같았다. 근데 요즘은 그게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쓸모를 남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꿈이었다. 근데 그럴려면 적어도 몇 푼의 돈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남을 돕지 않는다. 어불성설이다. 쓸모를 남기는 수많은 방법이 있는데 나는 시도하다 말아버렸다. 조금 울적해진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참 고통스럽다. 
지나치게 비관론자가 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사실을 바르게 보는 것이 두 눈을 가리고 모른 체 하는 것보다 훨씬 건강한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게 내가 좀 더 쓸모를 갖추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마지막 챕터에 장황하게 써있었지만 결론은 인간은 죽으니 진짜 가치 있는 것에 신경 쓰고 살자는 거였다. 나는 무얼 위해서 나고 자랐고, 어떤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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