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록 어쩌구/독후감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2017)

by annmunju 2024. 3. 20.
'있어 보이고' 싶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지 않다'라는 걸 전제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있지 않은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허영이죠. 요즘 식으로 말하면 허세일까요. 저는 지금이 허영조차도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신과 깊이와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래서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즐기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적 허영심일 거예요.

 책을 그리 많이 읽지도 않으면서 부단이 책 읽는 척, 공부하는 척 해왔다. 아예 안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탐독하는 수준까지는 못된다. 그저 이동할 때 책 한 권 가지고 다니며 잠깐 짬 날때 읽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재미 없는 부분을 읽을 때 말고 중간에 바짝 재미있는 구간을 만나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게 무언가 사소하지만 나랑 비슷한 마음의 저자의 생각을 글로써 잘 정리된 것을 만났을 때 그렇게 반가운 것이 없다. 이것이 내가 가진 지적 허영인 것 같았고 그게 나쁘지 않다는, 칭찬 같이 느껴지는 구절이었다.

 

내가 언제 책을 읽었을 때 재미있었는지, 언제 어떻게 책을 읽을 때 스스로 뿌듯했는지를 생각해보세요.그리고 다시 그 경험을 연출해보는 거죠.

 책 읽기를 늘상 좋아하기는 힘들다.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 발명이다.” - <책 읽는 뇌>. 애초에 좋아하기도 어려운 활자 읽기를 즐겁게 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부산에서 바다가 훤히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었을 때, 혼자 처음 간 작은 술집에서 소주 한병을 시켜놓고 책을 읽었을 때 그 분위기 하나하나가 멋스럽고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부득이하게 그 책이 <해변의 카프카>였던 것이,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문체를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다시 한 번 그런 편안한 독서의 마음을 느끼고 싶어졌다.

 

좋은 독서를 위해서는 책을 읽는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 그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서에서 정말 신비로운 순간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을 때 책과 나 사이 어디인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신비로우면서도 황홀한 경험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길을 찾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독서의 어떤 부분은 길을 잃기 위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는 일반적으로 살아가고 성장하면서 정해진 길이 있다고 믿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면 중학교에 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다가 조금만 벗어나서 다른 길로 가게 되면 너무나 두려워집니다. 하지만 정해진 길로 가는 사람들이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지요. 정해진 길로 가는 사람들도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길을 잃는 경험도 만들어줍니다. 진정한 독서는 정해진 길 밖으로 나가게도 만들고 그래서 길 위에만 있으면 안 보이는 것들도 보게 해줍니다. 길을 일부러 헤매게도 만듭니다. 우리가 살면서 크게 흔들리면 위험하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 서 흔들리는 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할 겁니다. 그리고 길 잃는 것의 해방감 이나 쾌락, 또는 생각지도 못한 이득도 얻을 수 있습니다.
...
'이 길이 옳은가' '나는 왜 사는가'에 대해 책이 답을 주지는 않지만, 일종의 방향성이나 지향성 같은걸 주는거죠. 

우울감과 불안감이 나를 좀먹을 때가 있다. 지금이 마치 그런 시기이다. 남의 말에 쉽게 휩쓸리고, 나에 대한 평가가 민감해진다.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면 할수록 내 스스로의 잘못처럼 여겨지곤 한다. 불만이 생기는 것은 결국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적대한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를 더욱 안좋은 상황에 내놓을 뿐이다. 요즘은 그냥 이유없이 생각없이 책을 읽는다.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부분이었다. 왜 책을 읽으려고 하나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책이 답을 주진 않지만 다양한 케이스들을 배울 수 있는 교보재 역할을 해준다. 길을 잃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간접 경험을 쌓을 수도 있고, 내 상황을 보대 인지적으로 객관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계속 읽는다.

 

저는 독서를 제 자신과 너무 동일시했어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고 어두운 사람인 것 같고, 이런 분위기에 취해서 일종의 자기 연민이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건강하지가 않았고 약간 병적인 측면도 있었어요. 독서 자체가. 그래서 소설도 일부러 어두운 것만 찾아 읽었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같은 것에 빠지기도 하고요.

스무살 초반에 한참 느꼈던 마음이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고 빈도라고.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말이에요. 아직 한 번도 안 해본 것들이 있잖아요. 남극에 가보겠다, 죽기 전에 이구아수 폭포를 보고 싶다, 우유니 사막을 방문하고 싶다 이런 것. 한번 보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고, 실제로 가보면 그래요. 그런데 저는 그게 행복이 아니고 쾌락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쾌락은 일회적이라고, 행복은 반복이라고 생각해요. 쾌락은 크고 강렬한 것, 행복은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에 있는 일들이라고. 그래서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습관론이 나오게 되는데, 행복한 사람은 습관이 좋은 사람인 거예요. 습관이란 걸 생각해보면, 습관이 없으면 사람은 자기동일성이나 안정성이 유지가 안 돼요.
...
저는 습관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오히려 쩔쩔매는 시간이에요. 그런데 패턴화되어 있는, 습관화된 부분이 행복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세요. 그러면 그 인생은 너무 행복한 거죠.

 

인생이 재미없게 느껴질 때. 가끔 별난 것을 해보고 싶을 때가 많다. 특히 헤어지고 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나는 등 상심이 생길 때면 나는 늘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어진다. 평소 가지도 않던 여행을 혼자 가보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던 사람들과도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보다 외롭다는 것이다. 
습관처럼 보내는 하루하루를 웃으며 보낼때가 훨씬 덜 외롭다. 매일 보는 동료들과의 수다가 더 재미있다. 매주 가는 운동이 더 신난다. 한 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관점이었지만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문장이었다. 이 책에서 제일 인상깊은 구절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