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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어쩌구/독후감

책은 도끼다 (2011)

by annmunju 2024. 2. 14.

특히 더 예민하고 날카로워진 요즘같은 때에 내 감성을 환기시켜준 책이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는 어딜 가거나 무엇을 먹거나 할 때 어떻게든 효율적이고 빠르고 쉬운 방법을 선택했었다. 그렇게 살며 내게 주어진 일들을 최대한 성공적으로 끝마쳐야 하고 내가 하는 일이 가장 빠르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더 일에 파고들었다. 그런 일은 열에 한 번 성공했고 아홉 번 정도 사라졌다.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미뤄졌다. 그래서인지 번아웃이 왔다. 어떤 일이든 빨리 끝내기 위해서 집중했던 전과 달리 그냥 멍하니 모니터를 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니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고 도움이 될 만한 일을 더욱 벌려놓고는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도 생겼다. 그런 내가 참 무책임하다는 생각을 자꾸 했다.

삶의 감수성과 풍요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던 중, 책에서는 자연과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을 가진 작가들을 소개했다. 그간 자연이나 작품을 보는데 멋지다, 예쁘다 그런 말만 늘어놓다가 말았는데. 시인이나 소설가의 면밀한 관찰을 통해 나온 문장들이 마치 이 좋은 것을 너만 모르고 살았다고, 조금 더 천천히 꼼꼼히 주변을 살피며 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첫 눈을 보았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저 하늘에서 내리는 무기물로 보았다. 눈을 보며, 어떤 눈은 쌓이고 어떤 눈은 닿자마자 녹아 없어지는구나. 눈을 밟을 때는 이런 소리가 나고, 그 눈이 단단해지면 이렇게 미끄러워 지는구나. 눈오는 날은 평소의 겨울보다 덜 춥게 느껴지는구나. 그 분위기는 어쩌면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번아웃을 겪으며 내가 삶에서 원하는 것은 자주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이야기를 예전에 본 것 같다. 책에서도 삶은 순간의 합이고, 순간의 행복을 찾는 것이 삶의 풍요로움이라고 말한다. 자주 행복하려면 자주 감동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빨리 급하게 해결하기 위해 사는 삶보다 꼭꼭 씹어먹고 꼼꼼히 관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모든 감정은 어쩌면 깊은 자기세뇌와 같다. 사랑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착각으로 사랑을 사랑하고, 불안한 상황을 자초하며 불안해하고. 그럼 행복하다고 믿는 그 자체로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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